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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 2007/11/04 20:23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8백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장의 임금 평균은 119만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하면 88만원이 된다"
"40대와 50대의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 활동의 맨 밑바닥에서 생산과 유통의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20대가 그에 적합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뒤늦은 세대 독립과 경험의 부족, 강요된 승자독식 게임으로 인한 획일성으로 앞으로의 미래도 암울하기 짝이 없다."
앞의 글은 이 책의 제목이 된 88만원 세대에 대한 정의이고, 뒷부분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상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현 20대의 불안과 절망은 이전 세대에 의한 강요와 약탈경제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를 위해서 게임이론에 따른 세대간 합의를 이끌어내든지, 아니면 20대 스스로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첫 섹스의 경제학
언제 처음 섹스를 하게 되는가? 그것은 언제 독립하는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언제 독립할 수 있는가?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여권신장 따위와는 무관하다. 경제학적으로 우리는 '예산 제약'의 상황에서 일종의 사회적 통제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결혼이나 출산을 연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이전 세대의 10대들 보다 훨씬 가난해진 것이다.
- 왜 우리는 18세에 독립을 할 수 없는가?
4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가 병역의 문제이다. 이는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두번째는 주거권의 박탈이다. 국민 경제의 부가 '이전세대'에서 '다음세대'로 이전되는 과정에 '현재세대'는 배제된다. 세번째는 교육비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혹은 동거를 하면서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이 생활비와 알바시장의 문제이다. 청소년 고용에 대한 합의가 없고, 임금경쟁이 없다. 다만 일방적 착취가 있을 뿐이다.
독립의 지체는 사회지체를 낳고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근본적으로 세대 지체 현상은 인질경제, 88만원 세대와 이어진다.
- 인질경제
인질경제의 시작은 1318 마케팅에서 시작된다. 패션과 소비재,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이 교육이다. 1318 세대에겐 경제력이 없고 부모로부터 이전되는 소비력이 존재할 뿐이다. 과시적 소비의 증가와 이로 인한 부모세대로부터의 부의 이전은 중간에 속한 '현재세대, 즉 88만원세대' 의 착취를 낳는다. 10대를 볼모로 잡은 부모세대들은 소비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세대'에게 그 지위권을 넘기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현재의 10대에겐 더 나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포디즘 이후 지식 경제 1세대로 변화할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88만원 세대에게 어떠한 기회도 없다. 지금의 10대가 지식경제 1세대로 변화하면 그들에게 밀려 도태될 뿐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공멸의 1세대로 어떻게 세대가 파괴되는지를 현재의 10대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 승자독식의 게임, 선택과 집중의 세대
앞서 말한 독립의 지연과 인질경제로 세대 지체가 발생하고 있고 그 몫은 고스란히 88만원세대들이 감당하고 있다. 세대지체는 경쟁의 룰을 '세대 내 경쟁'에서 '세대 간 경쟁'으로 확대시켰다.
직업선택의 룰은 평생소득의 개념으로 파악되며, 평생소득은 안정성과 소득의 함수로 구성된다. IMF이후 평생소득은 마치 석유나 석탄과 같이 한정된 자원으로 전락해버렸다.
종신고용이니 연공서열이니 하는 것들은 그것을 만들어온 세대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다. 비정규직 합법화와 글로벌화 물결은 노동시장 참가자간 소득 격차를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부모세대들의 지위권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은 88만원세대들에게 더이상 동기간 경쟁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입사원들은 입사하면서부터 상사들과 경쟁해야 하고, 심지어는 입사 준비생들과도 비정규직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이 마치 금과옥조인것 처럼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받아들이고 있고 88만원 세대는 덤덤히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고 있다. 경쟁력이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일견 자연의 섭리처럼 보이지만, 선택과 집중은 실은 개미지옥 게임이나 다름없다. 최소한의 공평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여성과 고졸, 싱글맘과 싱글파더들은 가장 먼저 지옥으로 떨어진다. 오직 선택받은 2%만이 살아남는다. 부모를 잘 만났거나 천재이거나. 게임의 룰이란 누가 가장 늦게 죽을까 그 뿐이다. 경제현장에서 선택과 집중의 룰은 학습기회를 박탈시켰다. 학습노동자는 사라지고 보이지도 않는 지식노동자만 난무하는 세상이다.
- 바리케이트와 짱돌
이상적인 해결책은 게임이론의 틀로써 세대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조건없이 인질을 풀어줄리도 만무하고, 치킨게임의 양끝은 부모세대가 아닌 10대와 20대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88만원세대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조건들, 평생을 일해도 집을 구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은 꿈도 못꾸는 상황들이 부모세대에게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화가 그러했든 불평등과 불합리는 극단적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부모세대는 불평등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들고 88만원세대들이 일어서야 한다. KTX 여승무원의 파업에서 희망을 보았으나 결국은 불가능으로 끝나고 말았다. 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금의 부모세대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88만원세대들은 민주화도 모르고, 배고픔도 모른다. 하지만 절망의 환경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왔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희망의 환경에서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지금의 세대를 조금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 느낀점
"술집은 출근 도장 찍듯이 드나들고, 당구장 가서 삼삼오오 당구나 치고 이랬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자리 좀 잡으니까 요즘 대학에는 문화가 없다 이런 소리나 한다. 운이 좋아서 대학의 낭만이라는 사치를 부려볼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고 입 닥치라."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도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거든요. 윗세대들이 대학 다닐 때는 시간이 아주 많았나 봅니다. 요즘 20대 생각 없다고 하는데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공부하는 애들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낭만이 없는가? 민주화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오로지 학점의 노예가 되어 취업에 목을 매는 '죽은 대학생' 그 뿐 아닌가?
대학 다니면서 나이든 선배들을 만나면 항상 듣는 얘기였다. 그때마다 나는 물어보고 싶었다. 그 시절 당신들의 낭만과 정의에 대한 고민으로 지금 한국의 문화수준과 경제수준, 정치수준이 고작 이따위냐고.
위의 인용은 어느 독자 서평에서 본 것이다. 이 책이 본인에게 나름 '문제작'이었던 건, 경제학을 이용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른들로부터는 공감받을 수 없는 스물 여섯 젊은 이의 억울함과 울분을 대신해서 토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상의 진단에는 전적으로 공감, 그것을 세대간 경쟁으로 인식한 것에는 일부 공감 - 세대의 틀보단 자본의 본질적 천박함이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됨 - 마지막으로 해결책 제시에는 조금 공감이었다.
승자독식, 개미지옥의 게임에서 바리케이트를 드는 순간 영원이 게임 아웃된다는 것을 작가는 몰랐을까. 그렇다고 어른들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어리숙함을 보이자는 게 아니다. 스스로 해결해야함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기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룰을 바꾸자는 투쟁은 좀 어의없어 보인다. 오히려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갈 세력화가 필요하고 그것은 취업이 아닌 창업이 되어야 한다는게 본인의 생각이다.
직업선택이 안정성과 소득의 함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창업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극단적으로 안정성이 제로인 상황에서 누가 창업을 희망하는가. 그것은 분명 다른 동기가 있다는 반증이며 그 동기와 유인을 지금의 20대에게 확대하여야 한다. 하나의 경제세력화 -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같은 - 가 필요하며 한국의 인프라와 심정적 절박함은 20대 창업붐을 충분히 가능하게 할 것이다. 창업이 일반화 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명백히 부모세대들의 사업장과 대학이 될 것이며 룰 변경은 그 때가서도 늦지 않다.
인력수급의 어려워지면 당연히 성장잠재력은 낮아질 수 있다. 국민경제의 부가 줄어들더라도 지금의 88만원 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인과응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이기적인건지 모르겠다.
책의 말미에 희망과잉의 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각종 처세서와, 성공서, 하지 않으면 안될 시리즈와 재테크 서적들은 인질경제가 출판계로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서적들을 보면서 실패가 뻔한 98%가 2%만의 성공을 꿈꾸며 희망을 착각한다. 희망고문이란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절대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새디즘과 매조히즘의 쾌락으로 희망 그 자체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이건희 회장의 천재경영론도 마찬가지다. 한명의 천재가 수십만을 먹여살린다고? 사실일지도 모를일이나, 그 천재가 수십만에게 자신의 부를 나눠줄 인심을 가지고 있는가? 삼성은 그러하였는가? 단하나의 강자가 나머지 수십만을 발 아래의 두며 내가 너희를 먹여살리고 있으니 내 말을 들으라는 지독한 거만함, 이건희 회장의 선민의식 그 뿐 아닌가? 만명이 함께 모여 일해서 한사람, 한사람씩 도와주며 사는 것이 진짜 경영이 아닐까. 씁쓸하다.
나는 어쩌면 2%인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감사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의 능력이 얼마나 모자라기에 감사할 환경에도 현실의 벽이 이렇게나 높게 느껴질까?
얘기가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아서 읽어도 정리가 잘 안되었다. 감정적으로 읽은 탓도 크고, 경제학 서적이라기엔 자극이 심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세대간 문제는 그 누구도 공론화하여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기에 신선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이 의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