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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2009/03/09 23:16

추리 소설의 수작이란 얘기를 본인 스스로 하고 있지만 건방지게도 책은 조금도 추리스럽지 않았다.
초반에 방법이니 어쩌니 하는 순간 나는 어떤 트릭을 썼는지 맞춰버렸다.
내가 산 책의 반바지에는 추리소설을 가장한 한 남자의 거룩한 사랑이야기 라는 서평이 나오는데,
거룩도 모르겠지만 그게 과연 사랑인가 의심스럽다.
외로움의 끝이 아니라 그리움의 끝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홀로 지내는 삶, 꿈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불행하지도 않지만 그냥 죽을 결심을 하는 사내 앞에
단 한 번 나타남으로 당신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한다면야 오히려 끔찍하지 않겠는가.
천재 수학자의 삶이라 그 생각 역시 극단적이고 지극히 논리적(?) 이어서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치자. 그 남자는, X는 그렇다치자.
하지만 그 거룩한 사랑과 희생의 대가는 무엇인가?
상대는 그의 사랑에 감복해서 자수를 하는가? 딸의 자살은? 결국 인간 본연의 죄책감이 아니었던가.
X에게 사랑이 있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게 만들 사랑이다.
자신의 용의주도함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든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다.
헌신이란 말도, 애초에 희생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을 자기 만족, 사랑에 대한 기만, 그 뿐이다.
사랑은 없다.
이 소설과 상관없이 나는 단언한다.
대개 세상이 믿는 사랑이란 누군가의 희생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고,
그렇게 홀로 남기고 떠난 이를 한 평생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아름답고 고귀한 무엇이지만,
현실의 사랑이란, 사전에는 존재하지만 실재로는 없는 것, 그 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랑의 모습도 이 책에는 없다.
추리도, 사랑도 아닌, 강렬한 소재 하나를 갖고 사진을 찍듯 그려낸 단편 소설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