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에 해당되는 글 2건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우석훈, 박권일 :: 2007/11/25 17:19

샌드위치 위기론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형국에서 기술, 자본, 인건비 어느 하나 그들에 비해 상대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반박 불가능한 명제'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넛크래커라 불리든 무엇이라 불리든 간에) 샌드위치라는 말도 맞고 위기도 맞는 말이나 샌드위치 위기론은 '대한민국 남성의 위기' 만큼이나 모호하고 자극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샌드위치 위기론은 기술은 없고 인건비는 비싸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것이 지정학적인 위치 혹은 중국의 급부상, 또는 일본이 경제 대국이어서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선발주자와 후발주자가 없는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음이 그 첫째 이유이고, 모든 산업에서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중후장대형 장치 산업, 즉 대기업들의 위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따라서 '이제 와서' '대기업'의 위기를 샌드위치라는 이름으로 맛있게 포장하여 한국 경제 전부를 관통하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치적 담론에 그칠 뿐이며,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을 가리는 교묘한 술책에 불과하다. 위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왜 기술은 없고 인건비는 비싸졌는가? 해답은 조직에 있다.
기업 조직의 발생
기업이라는 조직은 대량생산체제에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겨났다. 즉, 각자의 생산주체들이 한곳에 모여 일하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해 냄으로써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 더 많은 이익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시장 매커니즘에 의해 기업조직이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후 주식회사라는 모델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일종의 사회적 감시체계를 받아들이게 되고, 애초에 가졌던 경제적 이윤동기(조직구성원)와 사회적 책임(조직) 사이의 이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이격이 강화되는 최근의 경영 환경에는 일종의 의태 매커니즘이 발생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선량한 기업 시민이 되기를 바라면서 내부 구성원들에겐 부정이나 불합리, 비인간적인 경쟁을 강요함으로써 기업 구성원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 보다는 열심히 일하게 보이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Vs. 잘 먹고 잘 살아라!
조직 내부경쟁은 크게 공식조직간 경쟁과 비공식조직간 경쟁으로 나눌 수 있다.
공식조직간 경쟁은 본연의 업무에 몰두하면서 발생하는 타부서간 또는 업무간 정보흐름의 차단을 의미한다. 이는 성과경쟁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반면 비공식조직간 경쟁은 개인의 출신이나 배경에 의해 발생한다. 학연, 지연과 같은 것들인데 이는 조직 내부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능력있는 개인을 조직에서 떠나도록 만든다. 비공식조직의 조직 장악 의도로 창의성을 보유한 인재들이 조직을 이탈하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조직 전체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비공식조직 일원들은 더 많은 사람을 나가게 만들거나 '샌드위치' 라는 말로 위기를 왜곡시키고야 마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첫번째는 대기업 서너곳에 의한 독과점 구조이다. 모든 산업에서 그러하다. 진입장벽은 턱없이 높고 창업을 위한 지원은 전무하다.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 죽이기는 공공연히 벌어지는 일이고 심지어 국민들마저도 중소기업 제품이라하면 신뢰하지 않는다. 이는 비공식조직간 경쟁에 의한 왕국화가 전 경제구조로 확대된 모습인데, 경제 전반의 창조성은 사라지고 견실하고 능력있는 기업들이 모국을 떠나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속내가 '기업을 만들기 좋은 나라'는 아니었던 것은 자명하다.
두번째 문제는 더욱 심각한데, 생산조직과 비생산조직, 다시 말하면 제조업과 비제조업(지하경제를 포함한) 간 경쟁구도가 심화되면서 산업의 화석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제조업 기반의 생산이 금융화로 전개 발전되면서 제조업이 붕괴되고, 나중엔 금융 산업마저 사라지게 되는, 그야말로 한 국가의 경제구조가 껍데기만 남게 되는 현상을 산업의 화석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화석화의 단계 : 산업화 -> 금융화 -> 공동화
지금의 한국 경제는 산업화에서 금융화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공동화가 발생하는 단게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동화의 파국은 외면하고 금융화를 추진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금융화가 답인가? 미국의 신경제가 금융강국이어서 가능했는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6~7개의 세계 수준의 은행을 육성하려는 일본 정부의 욕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는가? 지금 우리 경제에 금융화가 답인가? 작가는 묻고 있다.
한국의 기업 조직
한국의 기업 조직은 군대 모델에 가족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인데, 이는 서양의 교회 모델과는 구분된다. 교회 모델이 신 앞에 평등한 행동의 균일화를 요구한다면 한국의 기업조직은 위계화를 강조한다. 즉, 사병이 해야할 일과 장군이 해야할 일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가족 모델의 결합은 조직 구성원에 대한 보호의 개념을 추가하였고 이것이 완전고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IMF 이후 완전 고용은 불가능해졌고 더 이상 가족은 구성원을 보호해 줄 수 없다. 왜 일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상실하면서 의태가 발생하고 사병은 더 이상 장군의 졸이 될 수 없다. 끊임 없는 성장을 전제로 군대 모델과 가족 모델을 결합한 한국의 기업 조직이 이제 더 이상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조직 구조의 변화없이 서양 조직의 문제 해결법들만을 차용한 결과가 위기의 근원이다. 기술도 없고 인건비만 비싸게 만든 것이다.
조직은 개인의 체화 지식을 조직화하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나 가족구성원이 아닌 개인은 체화 지식이나 네트워크를 사유화하려 하고 대게 절반의 수준에서 양자는 타협점을 찾는다. 지식이나 기술이 유전되지 않으니 기술이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실무조직은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
빨간펜이라고 불리는 중간관리층은 비공식조직을 형성하여 조직의 다양성을 파괴한다. 학벌중심, 남성중심, 권위의식에 사로 잡힌 중간관리층들은 임률은 높이고 인력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왜 인건비가 높아지는가? 왜 비정규직이라는 제도가 발생하는가? 결재 도장을 찍는 일 말고는 전부를 아웃소싱 해버리고 말 것인가? 누구도 비공식조직을 컨트롤 할 수 없다.
사례 : 삼성전자 Vs. 현대자동차
삼성은 노조가 없음에도 국민의 지지가 대단하다. 모두가 불평하지만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한다. 이는 극대화된 금전적 보상이 고용의 안정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을 마비시킨 결과이다. 여기서 질문. 만약 삼성이 지금과 같은,
선기술개발 -> 초기 시장진입 -> 투자비 회수 -> 경쟁사 진입 -> 저가 공세 -> 장기적 이익 확보
라는 선순환을 놓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저 그런 월급을 줄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다면 삼성이라는 조직은 그대로 유지 될 수 있을까?
이와 정반대되는 집단이 현대자동차이다. 강성 노조, 연례 투쟁으로 기회 손실이 엄청나지만 작가는 오히려 현대자동차가 삼성보다는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단 한번도 노조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삼성은 이를 효과적으로 대할 능력을 갖기도 전에 스스로 붕괴할지도 모른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질문
(1) 임률을 낮추고 인력을 유지하는 고용정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웃 소싱은 답이 아니다. 이는 고임금의 데스크만 남기게 될 것이다. 볼보 주의를 벤치 마킹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여 쓸데없는 곳으로, 교육이나 사치재와 같은, 생계비가 지출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2) 기업은 20대와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의 회사에 들어와 있는 20대는 지독한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승리한 귀공자이다. 그들은 협동을 모르는 대신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 조직에 승자 독식의 룰이 전방위로 펴져 단 한명만 살아남는 조직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면 그들이 협동진화의 원리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3) 마초주의를 버려야 한다. 한국의 기업조직은 여성과 일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 이는 소위 말하는 밤의 비즈니스가 중요한 때문이고 여기에서 각종 비리와 부정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기회는 공평하게 열려 있지 않다. 세상의 어느 여자도 출산을 포기하고, 폭탄주를 배우고, 골프를 치면서 회사 생활을 할 수는 없다.
(4) 지역 사회, 중소기업과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회적 신뢰 없이, 경제의 후방부대 없이 대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 느낀점
이건희 회장을 위시한 소위 경영자들이 샌드위치 얘기를 꺼낼때마다 좋아했던 것 하나를 잃은 기분이 들었다. 중국이 따라오고 일본은 멀리가고 있으니 위험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잠자코 있던 샌드위치가 정치 담론의 희생양이 되었다.
일등 없는 싸움이 있었던가, 경쟁자 없는 황금 들판이 존재하는가. 유사 이래 우리는 늘 샌드위치 상태였다. 한반도가 수년 사이 이 자리로 온 것도 아니고 중국이나 일본이 그러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면 경영자로서 자질을 의심 받아야 한다. 샌드위치는 마치 블루오션 열풍처럼, 당연한 얘기, 반박 불가능한 명제일 뿐, 위기의 근원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에 불과하다.
처음 샌드위치 위기론은 넛 크래커란 이름으로 맥킨지에서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영 컨설팅이란 유식한 이름을 가진 그들이니 자극적인 네이밍에 탁월할 것이요 언젠가는 공기나 물 따위도 위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다.
같은 얘기를 현직 경영자의 입에서 듣는 순간, 맥킨지는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면 너희가 힘들어 그러니 나 좀 도와줘, 행복해지려면 지금 정부를 찍으세요, 와 같은 흑색 선전이 머릿속에 얼핏 스쳐간 듯도 싶었다.
'88만원 세대' 를 잇는 우석훈 교수의 두번째 책인데.. 내용이 가지런하게 쓰여있지 않아서 읽는 데 굉장히 힘들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글 쓰기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구성만 그렇다면 모르겠으나 곳곳에 보이는 논리적 비약과 근거없는 단언들로 완독이 더욱 어려웠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평가, 공무원 조직, 지하경제 언급 등에서 보이는 주관적 판단이나 성급한 일반화 등은 참.. 공감이 안갔다.)
그러나 문제 인식과 제시된 해법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조직의 문제가 전부 책임 질 수는 없겠으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는 분명하고 그 방향 역시 볼보주의와 다양성을 키워나가는 방향이 옳지 않나 싶다. 더욱이 금융화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사회로 확산되고 있는데(우리가 못하고 있으니 더 그런것 같음) 개인적으로는 금융화의 절대 조건이 강력한 제조업과 자국통화의 기축통화화에 있다고 믿고 있다. 결국 아직은 요원한 일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기득권 확보와 지위 안정이라는 핑계로 위기는 기회라는 당연한 진리를 못보게 국민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 큰 기업이 할 일인가? 창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새로운 경제 구조, 기업 조직으로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대담론의 시작이 그들의 입에서 나온 샌드위치에서 비롯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 2007/11/04 20:23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8백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장의 임금 평균은 119만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하면 88만원이 된다"
"40대와 50대의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 활동의 맨 밑바닥에서 생산과 유통의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20대가 그에 적합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뒤늦은 세대 독립과 경험의 부족, 강요된 승자독식 게임으로 인한 획일성으로 앞으로의 미래도 암울하기 짝이 없다."
앞의 글은 이 책의 제목이 된 88만원 세대에 대한 정의이고, 뒷부분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상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현 20대의 불안과 절망은 이전 세대에 의한 강요와 약탈경제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를 위해서 게임이론에 따른 세대간 합의를 이끌어내든지, 아니면 20대 스스로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첫 섹스의 경제학
언제 처음 섹스를 하게 되는가? 그것은 언제 독립하는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언제 독립할 수 있는가?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여권신장 따위와는 무관하다. 경제학적으로 우리는 '예산 제약'의 상황에서 일종의 사회적 통제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결혼이나 출산을 연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이전 세대의 10대들 보다 훨씬 가난해진 것이다.
- 왜 우리는 18세에 독립을 할 수 없는가?
4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가 병역의 문제이다. 이는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두번째는 주거권의 박탈이다. 국민 경제의 부가 '이전세대'에서 '다음세대'로 이전되는 과정에 '현재세대'는 배제된다. 세번째는 교육비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혹은 동거를 하면서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이 생활비와 알바시장의 문제이다. 청소년 고용에 대한 합의가 없고, 임금경쟁이 없다. 다만 일방적 착취가 있을 뿐이다.
독립의 지체는 사회지체를 낳고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근본적으로 세대 지체 현상은 인질경제, 88만원 세대와 이어진다.
- 인질경제
인질경제의 시작은 1318 마케팅에서 시작된다. 패션과 소비재,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이 교육이다. 1318 세대에겐 경제력이 없고 부모로부터 이전되는 소비력이 존재할 뿐이다. 과시적 소비의 증가와 이로 인한 부모세대로부터의 부의 이전은 중간에 속한 '현재세대, 즉 88만원세대' 의 착취를 낳는다. 10대를 볼모로 잡은 부모세대들은 소비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세대'에게 그 지위권을 넘기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현재의 10대에겐 더 나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포디즘 이후 지식 경제 1세대로 변화할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88만원 세대에게 어떠한 기회도 없다. 지금의 10대가 지식경제 1세대로 변화하면 그들에게 밀려 도태될 뿐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공멸의 1세대로 어떻게 세대가 파괴되는지를 현재의 10대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 승자독식의 게임, 선택과 집중의 세대
앞서 말한 독립의 지연과 인질경제로 세대 지체가 발생하고 있고 그 몫은 고스란히 88만원세대들이 감당하고 있다. 세대지체는 경쟁의 룰을 '세대 내 경쟁'에서 '세대 간 경쟁'으로 확대시켰다.
직업선택의 룰은 평생소득의 개념으로 파악되며, 평생소득은 안정성과 소득의 함수로 구성된다. IMF이후 평생소득은 마치 석유나 석탄과 같이 한정된 자원으로 전락해버렸다.
종신고용이니 연공서열이니 하는 것들은 그것을 만들어온 세대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다. 비정규직 합법화와 글로벌화 물결은 노동시장 참가자간 소득 격차를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부모세대들의 지위권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은 88만원세대들에게 더이상 동기간 경쟁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입사원들은 입사하면서부터 상사들과 경쟁해야 하고, 심지어는 입사 준비생들과도 비정규직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이 마치 금과옥조인것 처럼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받아들이고 있고 88만원 세대는 덤덤히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고 있다. 경쟁력이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일견 자연의 섭리처럼 보이지만, 선택과 집중은 실은 개미지옥 게임이나 다름없다. 최소한의 공평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여성과 고졸, 싱글맘과 싱글파더들은 가장 먼저 지옥으로 떨어진다. 오직 선택받은 2%만이 살아남는다. 부모를 잘 만났거나 천재이거나. 게임의 룰이란 누가 가장 늦게 죽을까 그 뿐이다. 경제현장에서 선택과 집중의 룰은 학습기회를 박탈시켰다. 학습노동자는 사라지고 보이지도 않는 지식노동자만 난무하는 세상이다.
- 바리케이트와 짱돌
이상적인 해결책은 게임이론의 틀로써 세대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조건없이 인질을 풀어줄리도 만무하고, 치킨게임의 양끝은 부모세대가 아닌 10대와 20대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88만원세대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조건들, 평생을 일해도 집을 구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은 꿈도 못꾸는 상황들이 부모세대에게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화가 그러했든 불평등과 불합리는 극단적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부모세대는 불평등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들고 88만원세대들이 일어서야 한다. KTX 여승무원의 파업에서 희망을 보았으나 결국은 불가능으로 끝나고 말았다. 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금의 부모세대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88만원세대들은 민주화도 모르고, 배고픔도 모른다. 하지만 절망의 환경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왔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희망의 환경에서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지금의 세대를 조금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 느낀점
"술집은 출근 도장 찍듯이 드나들고, 당구장 가서 삼삼오오 당구나 치고 이랬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자리 좀 잡으니까 요즘 대학에는 문화가 없다 이런 소리나 한다. 운이 좋아서 대학의 낭만이라는 사치를 부려볼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고 입 닥치라."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도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거든요. 윗세대들이 대학 다닐 때는 시간이 아주 많았나 봅니다. 요즘 20대 생각 없다고 하는데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공부하는 애들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낭만이 없는가? 민주화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오로지 학점의 노예가 되어 취업에 목을 매는 '죽은 대학생' 그 뿐 아닌가?
대학 다니면서 나이든 선배들을 만나면 항상 듣는 얘기였다. 그때마다 나는 물어보고 싶었다. 그 시절 당신들의 낭만과 정의에 대한 고민으로 지금 한국의 문화수준과 경제수준, 정치수준이 고작 이따위냐고.
위의 인용은 어느 독자 서평에서 본 것이다. 이 책이 본인에게 나름 '문제작'이었던 건, 경제학을 이용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른들로부터는 공감받을 수 없는 스물 여섯 젊은 이의 억울함과 울분을 대신해서 토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상의 진단에는 전적으로 공감, 그것을 세대간 경쟁으로 인식한 것에는 일부 공감 - 세대의 틀보단 자본의 본질적 천박함이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됨 - 마지막으로 해결책 제시에는 조금 공감이었다.
승자독식, 개미지옥의 게임에서 바리케이트를 드는 순간 영원이 게임 아웃된다는 것을 작가는 몰랐을까. 그렇다고 어른들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어리숙함을 보이자는 게 아니다. 스스로 해결해야함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기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룰을 바꾸자는 투쟁은 좀 어의없어 보인다. 오히려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갈 세력화가 필요하고 그것은 취업이 아닌 창업이 되어야 한다는게 본인의 생각이다.
직업선택이 안정성과 소득의 함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창업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극단적으로 안정성이 제로인 상황에서 누가 창업을 희망하는가. 그것은 분명 다른 동기가 있다는 반증이며 그 동기와 유인을 지금의 20대에게 확대하여야 한다. 하나의 경제세력화 -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같은 - 가 필요하며 한국의 인프라와 심정적 절박함은 20대 창업붐을 충분히 가능하게 할 것이다. 창업이 일반화 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명백히 부모세대들의 사업장과 대학이 될 것이며 룰 변경은 그 때가서도 늦지 않다.
인력수급의 어려워지면 당연히 성장잠재력은 낮아질 수 있다. 국민경제의 부가 줄어들더라도 지금의 88만원 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인과응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이기적인건지 모르겠다.
책의 말미에 희망과잉의 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각종 처세서와, 성공서, 하지 않으면 안될 시리즈와 재테크 서적들은 인질경제가 출판계로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서적들을 보면서 실패가 뻔한 98%가 2%만의 성공을 꿈꾸며 희망을 착각한다. 희망고문이란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절대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새디즘과 매조히즘의 쾌락으로 희망 그 자체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이건희 회장의 천재경영론도 마찬가지다. 한명의 천재가 수십만을 먹여살린다고? 사실일지도 모를일이나, 그 천재가 수십만에게 자신의 부를 나눠줄 인심을 가지고 있는가? 삼성은 그러하였는가? 단하나의 강자가 나머지 수십만을 발 아래의 두며 내가 너희를 먹여살리고 있으니 내 말을 들으라는 지독한 거만함, 이건희 회장의 선민의식 그 뿐 아닌가? 만명이 함께 모여 일해서 한사람, 한사람씩 도와주며 사는 것이 진짜 경영이 아닐까. 씁쓸하다.
나는 어쩌면 2%인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감사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의 능력이 얼마나 모자라기에 감사할 환경에도 현실의 벽이 이렇게나 높게 느껴질까?
얘기가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아서 읽어도 정리가 잘 안되었다. 감정적으로 읽은 탓도 크고, 경제학 서적이라기엔 자극이 심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세대간 문제는 그 누구도 공론화하여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기에 신선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이 의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